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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상]세밑, 다시 비정규직을 생각한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0.12.31 15:14:00 조회수 : 3580
 

[경제와 사상]세밑, 다시 비정규직을 생각한다

 하종강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이마에 ‘착하다’고 씌어 있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언제나 맨 앞자리에 앉아 때 묻지 않은 얼굴로 강사와 눈길을 맞추며 강의를 들었다.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서민과 노동자들 중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현상을 두고 한 정치인이 “서울 강남의 부자들은 계급의식이 있는데 서민과 노동자는 계급의식도 없다. 자신들에게 유익한 정책을 반대한다”고 빗대어 말한 사실을 소개하며 ‘존재에 배반하는 의식’에 대해 설명했을 때, 그 학생은 게시판에 정중하게 항의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노동운동 몰이해 점점 심해져

공손한 말씨였지만 거칠게 표현하면 “신성한 학원의 수업시간에 ‘계급의식’과 같은 특정 이념의 용어를 사용하면 되겠느냐?”는 불만으로 읽혔다. 자신은 평등이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회복지론도 공부했고 장애인시설에 가서 봉사활동도 하지만 유일하게 동의할 수 없는 분야가 노동운동인데 그 이유는 노동자들의 이기적 투쟁이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글을 답안지에 적기도 했다.


우리 사회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 정도가 딱 그렇다. 올 한 해 동안 열심히 해온 일이 결국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데, 과연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 부끄럽다. 오히려 요즘 잘 나가는 사람들이 지금의 경지에 오르게 된 것은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와 난무하는 최루탄 속에서도 도서관 한 구석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시대로 퇴행했다. 그 이유가 유독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잘못이 많았기 때문일까?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 요구도 정당하고 그들의 노동조건도 개선되는 것이 사회가 발전하는 방향이라고 주장했다가는 그 세력에 아부하는 비양심적 인사로 분류될 판이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는 노동자가 대 자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양보하는 것이 미덕처럼 인식되는 상황까지 와 버렸을까? 잘잘못을 따질 것도 없이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끌어안지 않으면 자신들 투쟁의 정당성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결의대회에서 분신했다. 문화방송 에서 온 얼굴을 붕대로 감고 눈과 입만 겨우 뚫린 황인화씨는 퉁퉁 부은 입술로 짧게 피처럼 토했다. “왼쪽에는 정규직, 오른쪽에는 저, 똑같은 작업을 했습니다. 똑같은 작업에, 똑같은 작업지시서에, 똑같은 공구에, 똑같은 작업재료, 다 똑같습니다. 오로지 다른 건 정규직 앞에 ‘비’자 하나 붙은 것, 그것 하나 빼놓고는 다 똑같습니다.”


눈앞에서 분신을 목격한 활동가들은 ‘내가 대신 분신했어야 했다’는 부채감에 시달리며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한다. “바로 1미터 앞에서 인화 형 몸에 불이 활활 붙었는데, 어떻게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어요. 어,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하는 생각만 들고…. 그래도 경험 있는 선배들이 역시 다르더군요”라며 눈물짓는다.


분신·농성 그들의 절규 관심을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온정주의에 호소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앵벌이하냐?”고 비아냥거리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그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 당신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고용으로 겨우 경쟁력을 유지하는 기업들은 빨리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나라경제에도 유익하다는 것이다.


닭살 돋는 얘기지만, 올해 들은 가장 기쁜 말 중 하나는 딸아이가 보낸 트위터 메시지였다. “세상에는 우리들을 대신해 힘든 일을 선택하도록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너의 아빠도 그 사람들 중 하나란다.-<앵무새 죽이기> 읽다가 요 대목에서 아빠 생각이 나서….” 지금 이 시간에도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거나 농성 천막을 지키는 노동자들 가족에게 그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지금 싸우고 있는 당신의 어머니, 아버지, 딸, 아들, 자매, 형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 이 글은 경향신문 2010-12-31일자 신문에 난 기사를 스크랩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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