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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라이타 돌만한 것이!!!

작성자 : 돌멩이 작성일 : 2010.12.09 17:20:56 조회수 : 3747
 

  새벽마다 냉동품과 일일 배송품 납품을 하는 거래처에 영업부장이 새로 왔다.  열나게 짐을 까고 있는데, 얼굴은 조막만하고 머리털은 불에 그슬린 것처럼 곱슬거리고 눈자위는 귀 끝으로 한껏 치켜 올라간 그 부장 녀석이 꼬치꼬치 검수를 했다.

“임기삽니다!”

검수 확인을 받고나서 나는 장갑을 벗고 악수를 청했다.

“어? 그래. 나, 조은유통에서 온 강부장이야.”

조은유통이라면 지난 연말에 부도를 맞아 망한 회사였다. 키는 나하고 한끗 차이나 날까 말까, 나이도 나하고 엇비슷하거나 댓살 정도 아래로 보였다. 그런데 처음 보고 대뜸 반말이라니! 나는 기분이 슬긋 상했다. 그날따라 날씨가 워낙 추워 마당 구석에 드럼통으로 만들어 놓은 화목난로 주변에는 사람들이 옹송옹송 모여 있었다. 나는 그 틈에 끼어들어 불을 쬐면서 장갑도 말리고 신발도 말리고 모처럼 몸을 녹였다. 활활 타오르던 나무 파렛트 널판 몇 개가 불길을 잃고 금방 사그러 들었다. 그때, 강부장이 내 어깨를 툭 쳤다.

“어이, 저기 담장 밑에 가서 파렛트 좀 뽀개와.”

나는 뜨악하게 그를 쳐다봤다.

“얼른! 거 빠루하고 오함마 있거든.”

“아…… 예.”

나는 파렛트 한 장을 뜯어 와서는 불깡통 속으로 집어넣었다.

“에이! 고작 이걸 해왔어? 아침나절까지 불 피울려면 한 열장은 있어야 돼.”

“아…… 예.”

파렛트를 대여섯 장 더 뽀갰다. 이런 라이타돌 만한 것이 있나……. 라이타돌 만한 나는 함마를 내리치며 속으로 열불을 삭혔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라이타돌 만한 강부장은 라이타돌 만한 나에게 날마다 화목 심부름을 시켰다. 이런 씨양놈의 색히(금칙어라서)! 두고 보자.

“아우! 임기사 파렛트 뽀개는 체질이구만 그래?”

예의범절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고마움이나 미안함이라곤 태어날 때부터 지 애비한테 팔아먹었는지 숫제 나를 빠루귀에서 빠져나온 대못 취급을 했다.

“파렛트 까는 게 일인데요 뭘!”

나는 정중하게 담뱃불까지 붙여주며 지극히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어차피 어리숙하게 보이거나 밉보이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그러던 며칠 전에, 불을 쬐던 사람들이 모두 상차를 하러 가버리고 나만 남아 있었다. 담장 아래 흰색 짚차 한 대가 들어와 주차를 했다. 강부장 차였다. 라이타돌 만한 강부장이 차에서 내려 두 손을 후후 불며 불깡통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잠바 주머니에서 일회용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강부장이, 어이! 임기사. 불 좀 화악 살려놨어? 하면서 나에게 약 삼사 미터 쯤 왔을 때, 나는 슬며시 라이터를 깡통 속으로 던져 넣었다.

“아? …… 예. 오늘 좀 늦으셨네요. 전 바빠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는 부리나케 내 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타기도 전에, 불깡통 쪽에서 퍼엉!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고요를 찢고 뒤이어 강부장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으악!”

나는 조그만 라이타 한 개가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며 폭발할 줄은 몰랐다. 흘깃, 돌아보니 강부장이 얼굴을 감싸 쥐고 마당을 향해 마구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마당 모퉁이에 있는 수돗가에서 그 라이타돌 만한 것이 수도꼭지에 고개를 처박고 눈깔을 부비고 난리가 아니다. 폭음소리에 놀란 사람들까지 몰려나왔다.  나는 화물차 시동을 걸고 마당을 한바퀴 휘익 돌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오함마로 찍든지 빠루로 돌리든지 수도 빠이프까지 한번 뜯어내봐라, 쨔식아! 그 수도꼭지 진작 얼어붙었다!’

 

임성용 '하늘공장'

1965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으며 구로, 안산공단에서 공장노동자로 일했다. 1992년부터 노동자문예 『삶글』에 시와 소설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2년 제11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하늘공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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