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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한국성관계안전관리

작성자 : 안전 작성일 : 2010.11.11 09:32:49 조회수 : 3838
 

 냉동탑차 운전을 하고 있는 내가 오후에 식자재를 싣고 2차 배송을 나가는 곳은 서울의 강남과 송파지역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빌딩마다 사무실이 밀집해 있고 점심때가 되면 줄지어 머릿니나 서캐떼 같은 사무원들이 기어 나온다. 거리에는 그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한 식당들도 많다. 식당에서는 오전에 납품 받은 물건이 모자라거나 혹은 저녁 장사를 준비하려고 필요한 재료들을 다시 시킨다.



 송파대로변에 암소 한 마린지 두 마린지, 장사가 꽤나 잘 되는 고깃집은 거의 매일같이 주문을 넣는다. 어느 때는 점심밥이 떨어졌다며 쌀을 시켜놓고 얼마나 독촉을 하던지, ‘배달의 기수’인 나로서는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코스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일이 배달인데, 날마다 늦었다고 욕을 먹기 싫어서 그 집부터 들른 적도 있었다.


 암소 한 마린지 두 마린지, 그 식당이 있는 건물은 5층짜리 근린상가이다. 오후 두세 시쯤, 나는 조금 한가한 시간에 배달을 갔다가 얼굴은 옴팡지게 생겼으나 마음씨가 따순 쌀밥처럼 푸근한 주방아줌마에게 몇 번인가 밥을 얻어먹었고, 나중에는 적당히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졌다.

“송파에서만 식당이 삼천 개가 넘게 문을 닫았다는데 그래도 이집은 주문이 떨어지지가 않네요?”

올 하반기 들어 워낙 식당매출이 떨어지고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인지라 밥을 먹으면서 내가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자 식탁을 치우던 아줌마 한 분이 별일 아니라는 투로 내 말을 거들었다.

“여긴 괜찮어유. 건물 주인이 사모님 아부진데 임대료가 나가길혀 뭐혀. 걱정할 거 없슈. 사무실 사람들이 죄 도시락을 싸 가지구 댕기지 않구서는.”

알고 보니 그 건물주는 식당 주인의 아버지인 김노인이었다.


 칠십을 바라보는 그이는 일찍 상처(喪妻)를 했으며,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외동딸 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다. 홀로 어렵게 돈을 모은 그이는 노후를 위하여 5층짜리 빌딩을 한 채 샀다. 1층은 딸에게 식당으로 주고 나머지는 병원, 학원, 사무실로 임대를 내놓았다. 월 임대료 수입이 천만 원이 훨씬 넘었으므로 그이는 경제적으로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고집스럽게 돈만 쫓아 자수성가를 이루었지만 삼십 년이 넘도록 혼자 살다보니 그이도 외로웠다. 요즘 세상에 나이 칠십이 어디 노인이런가. 김노인도 어릴 적 중이염을 앓아 귀가 좀 어두워 귀에 보청기를 끼었을 뿐, 몸도 마음도 새파랗게 젊디나 젊었다. 후사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아들 두엇은 낳고도 남을 만한 여력이 넘쳤다. 그럼에도 그이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빌딩을 밑천으로 놀고먹는 게 죽도록 지겨웠다. 딱히 좋아하는 취미도 없이 가까이에 있는 아차산을 오르내리거나 가끔씩 동네 공원을 산책하거나 별 흥미도 없는 기원에 나가 바둑알을 만지작거렸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이는 남은 여생을 그렇게 소일하는게 너무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츰 뭔가 색다른 즐거움이 없을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이에게 꿈에도 그려보지 못한 신천지가 생겼다. 어느 날, 기원에서 설렁설렁 돈을 잃어주며 안면을 트고 지낸, 지루박 최라는 친구를 따라 댄스교습소란 곳을 갔다. 그곳은 이른바 사교댄스장이었는데,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면 파트너도 붙여주고 춤선생이 춤도 가르쳐주고 하루 종일 즐겁게 놀 수 있었다.

‘앞으로 찍고, 옆으로 찍고, 뒤로 돌아 차차차!’

그이는 멋쟁이 중늙은이 여자들과 손을 맞잡고 허리를 껴안고 발바닥이 닳아빠지게 지루박을 추었다. 춤을 추고 나서는 그녀들과 어울려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노래방도 갔다. 그이는 비로소 세상사는 재미에 얼씨구나, 빠져들었다. 지루박 최하고 진작부터 좀 친하게 지낼 걸! 그이는 최가가 소개시켜준 키가 작달막한 애인도 하나 사귀었다. 그녀는 눈웃음을 살살치며 은근슬쩍 그이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엔지니어 박은 승강기 수리기사다. 그는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강남지원 보수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 초고층 빌딩 숲이 도시를 점령한 21세기에 사람들은 승강기 없이는 하루라도 생활할 수 없다. 지하철, 백화점, 도서관, 공장은 물론이고 땅속에서도 땅위에서도, 주거시설인 아파트에도 밤낮으로 멈추지 않는 승강기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산업인력공단에서도 승강기기사와 기능사 시험까지 치르고 자격증을 따게 하는 것을 보면 단순한 이동시설인 승강기는 그 편리한 만큼이나 위험성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수리기사 박이 하는 일은 관할구역 내의 승강기를 정기점검하고 고장난 부품을 교체해주거나 수리해준다. 대부분 승강기의 유지보수는 관리업체와 건물주 간의 위탁계약으로 이루어지는데, 만일에 안전사고라도 생기면 검사원의 책임이 무엇보다 막중했다. 그러므로 그는 안전관리 체크리스트를 꼼꼼히 숙지하고 특히 말썽이 잦거나 오래된 건물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그는 남강빌딩이라는 건물의 승강기를 점검하러 나갔다. 지은 지 십년이 넘은 5층짜리 건물이었는데, 연식이 오래된 승강기는 간혹 도어슬라이딩 개폐에 문제가 생겼다. 남강빌딩 1층은 암소 한우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고깃집이었고 건물주는 무척 점잖으신 노신사였다. 예전에 팀원들과 함께 수리하러 갔다가 바로 그 고깃집에서 점심을 먹은 일이 있었다. 그는 주소와 건물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남강빌딩이죠?”

마침, 목소리가 우렁우렁하지만 차분한 어른이 전화를 받았다.

“으음. 나 쪼금 있다 나갈껴.”

“건물 관리인 되세요?”

“지금 얼굴 씻구 옷 입구 있다니께.”

전화에 잡음이 섞인 것도 아닌데 어쩐지 말이 엇나갔다.

“승강기안전관리 나왔어요!”

박은 전화 폴더를 귀에 바짝 대고 말소리를 더욱 높였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아 글씨, 곧 간다니께.”

하필이면 그때, 김노인은 욕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는 바람에 보청기를 빼놓고 있었다. 댄스장에 가자고 약속한 최가의 전화인줄 알았다.

“여보세요? 남강빌딩 아닙니까?”

전화를 잘못 걸었나 싶어 박이 큰소리로 다시 물었다.

“남강빌딩? 그려, 맞어!”

김노인은 그제서야 상대방이 최가가 아닌 것을 알고 보청기를 찾았으나 그 손톱만한 게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승강기안전관리원에서 검사 나왔어요!”

“뭐라고?”

전화에 귀를 기울이던 김노인은 그만 깜짝 놀랐다. 그렇잖아도 어두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무서운 세상이라지만 오싹, 소름이 끼치고 바짓단을 끌어올리다가 엉거주춤 서 있는 몸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승강기안전관리 검사 나왔다고요.”

“ 즈…… 증말이유?”

혈압도 없는 김노인은 뒷골이 핑그르르 돌고 정신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이는 똑똑히 들었다.

‘성관계안전관리 검사라니!’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일단 벗어나는 게 상책이었다.

“저그요…… 지가 시방 바쁜 일이 있어 그라는디, 낭중에…… 그려, 낭중에 저그 좀 합시다유.”

그렇게 둘러대고 김노인은 얼른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세상천지에나! 고걸 관청에서 으뜨케 알고 나왔을까……


 김노인에게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남몰래 저지른 죄가 있긴 있었다. 댄스장에 나가 신나게 놀면서, 춤만 추고 놀아난 게 아니었기에 차마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할 은밀한 사정으로 뒤가 켕겼다. 바로 최가가 소개시켜준 여자, 그녀와의 연애 때문이었다. 키가 작달막하고 눈웃음이 헤푼 그녀에게 김노인은 홀라당 눈이 멀었다. 환갑이 갓 지난 그녀는 그만하면 얼굴도 어여쁘고 생각보다 행실도 조촐했다. 시장 난전에서 건어물 장사를 한다는 그녀는 역시, 혼자 된지 오래였고 이혼한 자식이 남긴 어린 손자를 맡아 키우고 있었다. 가진 돈푼이나 있겠다, 몸 성하겠다, 우세두세 딸린 가족들 없겠다, 그녀에게 김노인은 딱 제 입으로 따먹기 좋게 가지가 늘어진 잘 익은 홍시나 다름없었다. 거즘 반생을 홀애비로 살아온 김노인도 금방 그녀에게 정분을 주고 늘그막에 외로움을 달래줄 기꺼운 사람으로 여겼다. 그녀에게 생활비도 넉넉잖게 건네주었고 만난 것, 값진 것, 좋은 것, 부러운 것,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그녀가 원하는 대로 베풀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김노인의 성격이 너무 완고하고 소심해서 자꾸만 딸자식 내외의 눈치를 본다는 점이었다. 굳이 한 살림을 차리고 살지는 않더라도 기왕에 서로가 정분을 두었으니 자식에게도 탁 터놓고 눈칫살 없이 왕래라도 하고 살았으면 좋으련만, 그이는 한 발짝도 대담하게 썩 나서지를 못했다. 고작 한다는 말이, “나이 칠십 줄에 무슨 염치루다……” 뒷꼭지에 붙은 부스럼을 털어내듯 머리통만 긁적거렸다.


 그렇지만 남녀칠세자동석이라는 동서고금의 진리가 어찌 달아날 수 있으랴. 젊으나 늙으나 석가모니불, 성모마리아상을 합방시켜 놓은들, 둘이서 밤새 면상이 떨어져나가도록 묵묵부답 쳐다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이니. 인간이고 만물이고 어쩌면 초자연적이기도 한 음양의 습속을 단지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터부시하고 또한 그것을 범하면 부정한 짓으로 보는 뭇 사회의 인식이 노인들에게는 엄청난 제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제제에서 자유롭게 벗어나려면 스스로 그 금기 자체를 깨드리는 수 밖에 없다. 김노인과 그녀는 마침내 만리성을 쌓고 말았다. 그것도 설익은 밥을 익히듯 뜸을 들이고 들이다가 바로, 며칠 전에……


 둘이서 교외로 빠져나가, 못 마시는 술을 자못 마시고, 그 밤에 아무도 몰래 벌어진 일을 도대체 관청에서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김노인은 눈앞이 캄캄하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혹시, 인근 천호동에서 경찰이 들이닥쳐 성매매 집중단속을 벌인다고 하던데 그 일 때문일까. 아니면, 에이즈니 뭐니 무서운 병이 돌고 그 병에 걸리면 약도 없이 죽는다던데 그 병을 예방하려고 보건소에서 검사를 다니는 걸까? 김노인은 갈아입으려던 옷을 방바닥에 벗어던지고는 양은솥에서 뜨거운 김이 나도록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걱정은 딸이나 사위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창피스러워서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꼼짝 못하고 안절부절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검사원인데요. 그럼 언제쯤 가능하세요?”

김노인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 잘못했습니다!”

나즈막히 겨우 입 밖으로 기어 나온 김노인의 말에 이번에는 수리기사인 박이 엉뚱하게 되물었다.

“예? 뭐가 잘못됐다고요?”

어차피 이렇게 된 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김노인은 이실직고를 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은…… 두 번 밖에 안했습니다.”

실토를 하고나서, 김노인은 뒤늦게 꾸역꾸역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엄연한 남의 사생활을 무턱대고 침범하는 관청의 행태가 속이 뒤집히도록 불쾌하고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암소 한 마린지 두 마린지, 고깃집에서 오늘도 굉장히 많은 주문이 들어왔다. 오후 배송이 뜨는 날이면 나는 빨리 퇴근도 못하고, 더구나 반품까지 치게 되면 이래저래 일이 늦어 곤욕스러웠다. 식용유와 말통, 밀가루 등 무거운 물건을 내려주고 속이 짓무른 야채 반품을 챙기고 있는데 얼핏, 식당 앞으로 난 도로에 등산모를 눌러 쓴 노인이 지나갔다. 그이는 웬일인지 등이 굽어 보였고 걸음걸이도 힘이 없어 무척이나 고적했다.

 

임성용 '하늘공장'

1965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으며 구로, 안산공단에서 공장노동자로 일했다. 1992년부터 노동자문예 『삶글』에 시와 소설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2년 제11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하늘공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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