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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어느 교장선생님에 관한 기억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0.08.13 08:52:35 조회수 : 4054
[경제와 세상]어느 교장선생님에 관한 기억
 하종강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지난해 말, 전북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부탁받았다. 강의에 앞서 교장선생님이 행사 취지를 설명하고 강사를 소개하는 간단한 인사말을 시작했다. “제가 오늘 퀴즈를 두 개 준비했습니다. 첫번째입니다. 거북선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사람들은 당연히 “이순신”이라고 답했다. “나대용 장군”이라고 답하는 이도 있었다. 교장선생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이순신 장군이 직접 망치 두드려서 땀 흘려가며 거북선을 만들었을까요? 거북선을 직접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친일파 화가의 논개 초상 바꿔

교장선생님의 질문은 누군가 “목수요”라고 답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렇습니다. 거북선은 목수가 만들었습니다. 목수를 요즘 말로 하면 ‘노동자’입니다. 그러니까 거북선은 노동자가 만든 겁니다. 그럼 이제 두번째 퀴즈를 내겠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노동자일까요? 아닐까요?” 아무도 답을 하지 못하자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노동자가 맞습니다. 바로 며칠 전 뉴스에도 프로야구 선수들이 선수노조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는 기사가 나왔잖아요. 프로야구 선수들도 노동자입니다. 오늘 이러한 이야기를 저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해주실 분을 모셨습니다. 하종강 소장님을 소개합니다.”

세상에, 그런 교장선생님이 실제로 계셨다. 이 얘기를 듣고 ‘그 교장선생님이 빨갱이 교육을 한다’고 비난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또 있겠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대부분 가르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처럼 제도권 교육에서 노동의 가치와 중요성을 가르치지 않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강의가 끝난 뒤, 점심을 사주겠다고 해서 함께 학교 현관을 나서는데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제가 저… 차가 없습니다. 소장님 차를 좀 얻어타도 되겠습니까?” 내가 “아니, 무슨 교장선생님이 차가 없어요?”라고 힐난하듯 농담을 하자 교장선생님이 답하신다. “제가 지금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정부에서 자전거 등록제인가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해서, 군청에 장수군 1번을 배정해달라고 신청해놓고 있는 중입니다. 하하…”

식당으로 가는 길에 장수가 고향인 논개의 사당 ‘의암사’가 보였다. “논개 사당에 가 보셨느냐?”고 해서 “아직 못 가봤다”고 했더니, 잠깐 들르자고 한다. 교장선생님이 장수에 부임해서 보니, 친일파 화가가 그린 논개 초상화가 사당에 걸려있더란다. 교장선생님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논개 초상화를 친일파 화가가 그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생각으로 마을 유지들과 모임을 만들어 논개 초상화를 바꾸는 데 또 몇 년이 걸렸다고 한다. 소관부처 장관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어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논개의 성인 ‘주(朱)’씨 집안 여성들의 체형과 얼굴 모습을 조사해 만든 새 초상화가 사당에 걸려있다.

“교육은 선택” 소신 중징계 받아

그 학교에는 ‘교장실’도 없었다. 처음 나에게 연락한 선생님은 “학교에 도착하면 우선 교장선생님을 만나라”고 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교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교육사랑방’이란 팻말이 달려있는 방에 교장선생님이 계셨다. 그 방은 학교에서 가장 마음 편한 공간이었다. 강의 뒤 내려가보니 ‘몸이 불편하다’는 등의 이유로 강의 중간에 나간 학생들이 그 방에 모여 교장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그날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학교에 출석하지 않는 이른바 ‘놀토’에 진행됐다. “교육은 선택”이라는 평소 교장선생님의 소신대로 그날 출석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해 학생과 학부모들을 설득해서 ‘선택’하도록 했고, 대상 학생과 학부모 거의 대부분이 행사에 참석했다. 일제고사와 체험학습을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이유로 교육당국으로부터 두 번이나 중징계를 받은 장수중학교 김인봉 교장선생님, 그 분이 며칠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시대는 정말 훌륭한 선생님 한 분을 잃었다.
 
- 이 글은 경향신문 2010-08-12일자 신문에 난 기사를 스크랩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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