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년 도읍지

작성자 : 길재 작성일 : 2017.10.18 08:28 조회수 : 4459

길재는 고려 말의 충신으로, 조선이 건국된 뒤 1400년(정종 2)에 이방원(李芳遠)이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말하며 거절하였다. 세종이 즉위한 뒤 길재의 절의(節義)를 기리는 뜻에 그 자손을 서용(敍用)하려 하자, 자신이 고려에 충성한 것처럼 자손들은 조선에 충성해야 할 것이라며 자손들의 관직 진출을 인정해주었다.



이 시조는 고려 말 3은(三隱)의 한 사람이었던 야은(冶隱) 길재(吉再)가 백의(白衣)의 몸으로 영화로웠던 고도(古都) 송도(松都)에 와서 인재들은 흩어져 없어지고, 폐허가 된 것을 보고 인생무상이 느껴져 읊은 것이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도라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